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 유계준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879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알지 못하는 병에 걸려 약값으로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그후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나자 청소년 때 평양으로, 청전쟁 이후로는 미림리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소금 장사 집에서 취직해서 일했는데, 주인이 눈여겨보고는 자기 딸과 결혼시키고 장사를 물려주었습니다. 생활이 안정되고 사업이 잘 되자 그는 도리어 삶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술을 마시고 시장을 휘젓고 다니면서 깡패처럼 살았습니다.

2. 어느 날 그가 시장에 갔는데, 마포삼열 선교사님의 조사였던 한석진과 제임스 홀 선교사의 조사였던 김창식이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관가에 고발을 했습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참수형에 처해지기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단두대에 목을 올려놓은 순간, 이 소식을 들은 마포삼열 선교사가 고종황제의 어명을 가져온 덕분에 두 사람은 살아났습니다.

3. 두 사람은 또다시 시장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다가 단두대에 목까지 대었던 사람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유계준은 분명히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 살아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들이 나눠 준 전도지를 보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포삼열 선교사님에게 "제가 관가에 고발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후 그는 산정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고 교회 장로로 세워졌습니다.

4. 그러던 중 1938년 9월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했고, 산정현교회의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했습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기 시작했고, 주기철 목사님은 옥살이를 했습니다. 무려 5년 4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주기철 목사님의 뒷바라지를 유계준 장로님이 사재를 털어서 섬겼고, 장례식도 치러 드렸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해방될 때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5. 그후 공산당이 들어와서 교회 건물을 쓰겠다고 할 때 반항하다가 결국 빼앗겼는데, 이후 자기 집을 교회로 내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8남매와 아내는 남한으로 내려보내고 그는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1 0월 공산당의 손에 조만식, 오윤선 장로와 함께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6.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겼는데, 결국 8남매만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온 부인 윤덕준 권사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유계준 장로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어떤 분의 통계에 의하면, 하나님이 그 자녀들을 친히 인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0년 통계를 기준으로 유계준 장로의 가정에는 박사가 153명, 장로가 30명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7.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도 여전히 많은 삶의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들이 더욱 악화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당장은 희미하고 어둡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인생을 인도해가 시리라 믿음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_ 시편2 16:5